실제로,,,
하버드 대학의 과학자들이 소립자를 입자가속기에서 분석해봤습니다.
그러자 정말 놀라운 현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현상을 실험한 과학자들이 [종교와 과학은 결국 일치하게 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실험의 결과는,,,
[소립자가 순간 파동으로 변하고, 그 파동이 다시 물질, 즉 소립자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때,,,
각 물질마다 파동으로 변할 때의 각각의 진동수는 물질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그것을 [그 물질의 고유 진동수]라고 합니다.
이 이론이 현대 물리학의 최고 이론인 [진공(眞空)이론 : vacuum diagram]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공이란 에너지를 가진 힘의 공간 즉, 에너지 파동이라는 뜻입니다.
이 현상의 발견은 미래의 과학 발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나무에 금의 진동수를 넣어주는 방법만 안다면 나무를 금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겁니다.
불교식으로 해석하면 [공즉시색이요, 색즉시공이다.]가 증명된 것이고,
기독교식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우주가 탄생된것]이 사실일 수 있다는 겁니다.
참고로,,,
공즉시색 색즉시공은 불교의 최고봉이라 평가되는 반야심경의 핵심어입니다.
[공 :공간,,, 즉 :또한, 즉 ,,, 시 : 바로 ,,, 색 : 물질 ->공간은 바로 물질이며,,, (색즉시공) 물질은 바로 공간이다]
라는 애매모호한 해석이 오랫동안 전해져 왔었는데요,
미국의 과학자들이 여기서의 공간 = 에너지 파동 임을 밝혀냄으로써,
반야심경이 진정한 미래 과학의 최첨단을 뜻하며,
반야심경의 궁극적 의미는 결국 물질이 정신에너지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밝혀낸 것입니다.
이 실험에 가담한 과학자들은 모든 물질은 어떤 높은 파동에너지를 향하고 있으며,
그 영역은 아마도 깨달음의 세계, 창조주의 정신 세계일것이다. 라는 생각에 이의가 없었고,
[인간은 좀더 자연과 타인을 배려하고 겸허해야 하며,
자신의 진화에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라고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의 생활 속에 [염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진공이론은 강한 염원은 현실화 된다는 뜻이며,
일상 생활에서 좋지 않은 말 한마디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즉, 강한 파동에너지, 그러한 음파는 물질로 변화되는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물질도 순간 찰나에 파동으로 변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좀더 살펴보면,,,
물질이 파동으로 변하는 속도를 계산해보니까,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1초에 3000번이고 범위는 반경이 약 100m정도라고 합니다.]
차근 차근 설명드리자면,,,
사람이라는 물질 덩어리가 반경 100m의 넓이의 파동으로 변했다가 다시 물질 덩어리로 변하는데,
그 속도가 1초에 3000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질상태의 인간과 파동 상태의 인간의 에너지가 같을까요?
이론적으로는 같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파동 상태일 때가 훨씬 크다는 겁니다.
왜냐 하면, 옆에 있는 사람, 나무, 물 같은 모든 물질이 같은 현상을 만드니까 파동 상태에서 에너지가 서로 섞이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을 [파동 에너지교환] 혹은 [기(氣)교환]이라고 합니다.
더욱 더 중요한 사실은,,,
지구 자기장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남극에서 북극으로 이동하면서
지구 전체 물질파동을 하나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지구 자기장으로 연결된 파동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가 파동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론적으로,,,
물질이 파동이 되고, 다시 파동이 물질이 되는 과정이 바로 생명체와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공즉시색, 색즉시공의 방식으로 진화를 한다는 겁니다.
이때,,,
바로 인간의 심성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기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이 파동으로 바뀔 때,
주변의 파동에너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기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의 파동은 이웃하는 사람뿐만이 아닌 다른 동, 식물 생명체에게도 그대로 노출되어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 한명은 지구전체의 네트워크에 구멍이 뚤린 불행한 일입니다.
자신의 주파수를 희생과 봉사의 주파수로 바꾸고,
자신의 인간성을 빈그릇으로 만들라는 겁니다.
이기적으로 많이 취하려고 하면 정말 조금 밖에 가질 수 없지만,
에고를 버리고, 이기심을 버리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진정 사랑할 때,
그 사람에게 무한한 지구의 생명 에너지가 굽이쳐 들어온다는 겁니다.
(마이클도 극명한 하나의 예였지요.)
또한, 그렇게 생성된 훌륭한 파동이 바로 옆의 생명체에게 그대로 전달, 복제가 됩니다.
그래서 [식물과 동물은 기르는 주인의 성격을 닮는다]는 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 동영상 등,,모든 자료에 사랑을 느끼고 치유를 받는 것 아닐까 싶어요.)
굳이 마하리쉬 마헤쉬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심성이 착한 한사람이 우주를 풍요롭게 만들며, 사악한 말 한마디가 우주를 지옥으로 만든다]는 말이,,,
[모든 생명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강조한 말입니다.
조그마한 수첩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고마움을 하루에 하나씩만 써보십시오.
그리고 그 고마움을 항상 표현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가식적이고, 형식적이고, 제가 부탁드리니까 하시는 것이겠지만,,,
일단,,,
한번 해보세요,,,
아내가 식사 한끼 차려줄 때,
아빠가 옥상에서 일하고 있을때 아이들이 물을 가져다 주었을 때,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눈과 가슴으로부터 퍼져나가는 것을 본인이 느끼는 동시에,
그 파동을 가족도 같이 느끼면서 행복해하는 기적을 경험할 것입니다.
일반 사회 현상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무리 양아치가 잘 차려 입고 외제차를 몰아도 근본은 1분안에 드러납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기꾼들에 속아서 패가 망신하는 일반인들은 뭐냐고요?
안타깝지만 속는 사람의 심성도 같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이기적이고 생활 속에서 괘씸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보복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 역시 타인에게 즉시 노출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는 겁니다.
사람의 주파수가 희생, 사랑으로 변하고 현실적으로 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변하는 것이 시작만 하면 변화는 급물살을 타게됩니다.
모든 것을 나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십시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것을 먼저 하시라는 뜻입니다.
신과의 채널링,,
신의 도구,,
이런 마이클의 말들이 물리학의 최첨단 이론과 긴밀히 연결되는데요.
이런 최첨단의 실험이 아니더라도,,
해외의 많은 아티스트들이,,그들만의 직관력으로,,
신의 에너지로 빛나는 마이클,,
마이클의 그런 신성한 면을 꿰뚫어 보는 작품들을 모아 봤어요.
그리고,,
가슴아픈 그림이에요.
사탄의 공격으로 상처입은 마이클

그리고...
승리한 대천사 미카엘

아래 두 작품 모두,, David Lachapelle 라는 영국의 한 예술가가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아래 그림은 특히 마이클 사후에 <대천사 미카엘>이라는 주제로,, 마이클 사진을 이용해서 만든 작품인데요.
선데이 타임즈에 처음 실렸다고 합니다.
천사와 사탄의 대격돌...
그리고 천사의 승리...
그런 메시지를 저역시 분명하게 느꼈는데요.
지구상의 이곳 저곳에서,
신의 도구로서의 마이클을 극명하게 느끼나 봅니다.
그리고,,
파장이 찰나 찰나 연속되어 물질로 보이는,,
하지만, 단단한 물질이 아닌,, 파장으로 가득하다는 진공이론을 접하고 보니,
감사와 사랑의 수첩을 하나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ㅎㅎㅎ
천국으로 가는 결정적 비법이군요.^^
우주의 무한한 사랑의 에너지로 완전히 연결된 네트워크를 염원해 봅니다.
색즉시공의 좀 더 깊은 이해를 보실 분들,,
열어 보세요.^^
< 空은 無가 아니다. >
물직적인 현상(rupa, 色)과 수냐(sunya, 空)는 同質의 양면 현상이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色不異空 空不異色)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rupa, 色)이라는 것을,
場(sunya, 空)이 극도로 강하게 집중된 공간의 영역들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새로운 물리학에서는 <場>과 <물질>의 양자를 위한 것이 있을 수 없다.
場이 곧 유일한 실재(空卽是色)이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들을 떠받치고 있는 實在는 어떠한 형태로 초월하고 있으며
어떠한 묘사와 詳述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그것은 종종 <空(sunya)>이라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空>은 단순한 無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형태들의 본질이며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우파니샤드에서는 이렇케 말하고 있다.
브라흐만(Brahman)은 생명이요,
브라흐만은 환희요,
브라흐만은 虛이다....
환희는 진실로 虛와 같은 것이다.
虛는 진실로 환희와 같은 것이다.
불교도도 그들의 궁적적 實在를 <수냐(sunya, 空)>라 부르며
환상적인 세계에서의 모든 形相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 <살아 있는 空>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道敎徒들도 이와 유사한 무한하고 끊임없는 창조성을 <道(Tao)>에 돌리고 있으며
역시 그것을 <虛>라고 부르고 있다.
“天道는 空하며 無形하다”라고 管子는 말하고 있으며
老子도 이 <虛>를 설명하기 위해서 몇 가지 은유를 쓰고 있다.
그는 종종 <道>를 움푹한 계곡이나 혹은 영원히 비어 있는 그릇으로 비유하며
무한한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본다.
동양의 성현들은 그들이 <브라흐만(梵)>, <수냐(空)>, <타오(道)>에 관하여 언급할 때
<空>, 또는 <虛> 등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것은 일상적인 공허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오히려 그것은 무한히 창조적인 가능성을 지닌 <空>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양의 신비주의의 <空>은 쉽게 亞原子 물리학의 <量子場>과 비교될 수 있다.
<量子場>처럼 그것은 한없이 다양한 형상을 낳으며, 그것을 보존하면서 결국엔 다시 거두어들인다.
우파니샤드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요함, 그것을 경배하라.
그는 그것으로부터 와서
그것으로 돌아간다.
그 속에서 숨을 쉬고 있으므로.....
신비적인 <虛>의 현상적인 현현들은 亞原子的 소립자들처럼 靜的이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라,
끊일 줄 모르는 운동과 에너지의 율동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動的이고 순간적인 것이다.
물리학자의 亞原子的 세계와 같이 동양의 신비가의 현상적인 세계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탄생과 죽음,
곧 輪廻(samsara)의 세계이다.
이 세계의 모든 사물들은 <虛>의 순간적인 현현이므로 아무런 근본적인 주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특히 불교철학에서 강조되는 것으로서 어떤 물질적 실체 같은 것의 존재를 부정하며
또한 지속적인 경험들을 겪는 변치 않는 <自我>란 생각은 하나의 망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도들은 이러한 물질적인 실체와 개체적인 자아란 망상을 파도의 현상에 비유하였다.
물의 粒子들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움직임은 우리들로 하여금 일편의 물이 그 표면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믿게 한다.
물리학자들이, 운동하고 있는 입자에 의하여 생긴 물질적인 실체 같은 환상을 지적하기 위해서
場이론의 구조에서 동일한 유추를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주시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헤르만 와일(Herman Weyl)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物質의 場이론>에 의하면 電子와 같은 물질적인 粒子란 단지 場力이 엄청나게 높이 집중되어 있는 電氣場의
한 좁은 영역에 불과하며, 이것은 비교적 큰 場에너지가 매우 좁은 공간에 결집되어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에너지의 마디는 결코 남아 있는 場과 뚜렷하게 윤곽을 지을 수 없으며 호수의 표면을 가로질러 가는
파도와 같이 빈 공간을 통하여 전파되어 나아간다. 그러므로 電子를 구성하고 있는 單一體 같은 것은 없다.
<루빠(rupa, 色)>와 <수냐(sunya, 空)>의 관계는 서로 배타적인 대립의 상태로서 생각될 수가 없으며,
다만 同一實在의 兩面性으로서 共存하면서 연속적인 협력관계 속에 존재한다.
이와 같은 반대되는 개념들이 하나의 단일한 全體로 융합되는 것은 반야심경 속에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로 표현되어 있다.
Form is emptiness, and emptiness is indeed form.
Emptiness is not different from form, form is not different from emptiness.
What is form that is emptiness, what is emptiness that is form.
( 色卽是空 空卽是色 色不異空 空不異色 )
場(空)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것은 결코 제거될 수가 없다.
그것은 모든 물질적 현상의 수레이다. 그것은 그것으로부터 陽性子가 파이 中間子들을 생기게 하는 <虛空>이다.
소립자들의 나타남과 사라짐은(色의 浮上과 沈沒) 단지 場(空)의 운동 형태에 불과하다.
어떤 核子나 다른 강하게 상호작용하는 소립자가 없더라도 가상적 소립자들이 虛空으로부터 스스로 생겨났다가
다시 虛空으로 사라지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을때, 결국 물질과 빈 공 간 사이의 구별은 버려져야만 했다.
여기에 그러한 과정에 관한 眞空圖式(a vacuum diagram)이 있다.
세 개의 소립자 - 陽性子, 反陽性子, 파이中間子 - 가 아무것도 없는 데서 형성되고는 다시 眞空 속으로 사라진다.
場理論에 따르면 그러한 종류의 사건들은 항상 일어나고 있다.
<眞空>이란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그것은 끝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무수한 粒子들을 함유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현대물리학이 동양의 신비주의 <虛>에 가장 가까운 유사점이 있는 것이다.
동양의 <虛>와 같이 <물리적 眞空(場理論에서 이렇게 불리었다)>은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소립자 세계의 모든 형태를 지닐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형태들은 독립된 물리적 실체들이 아니라, 단지 근본적인 <虛(空)>의 일시적 출현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듯이 루빠(rupa, 色)가 수냐(sunya, 空)요, 슈냐가 루빠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가상적 소립자들과 眞空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動的 관계이다.
眞空은 진실로 생성과 소멸의 끝없는 리듬으로 고동치는 <살아있는 空>이다.
이 眞空의 動的인 성질의 발견은 많은 물리학자들에 의하여 현대물리학에서 최고로 중요한 발견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물리적 현상을 담는 빈 그릇으로서의 역할에서부터 <虛(空)>는 이제 가장 중요한 動的인 量으로서 나타났다.